2023. 10. 7. (토)
날씨 : 해 쨍쨍, 더움
출발 : Burguete
도착 : Zubiri
거리 : 18.77km
시간 : 08:00 → 14:00
숙소 : Concejo de Zubiri Pilgrims Hostel
비용: 30유로(42,00원)
아침(커피) : 1
간식 맥주 2잔 : 7
알베르게 : 12
저녁 및 아침 거리 :10
어제 괜히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다음날을 생각해서 10시에 자리를 마치긴했지만 그래도 맥주를 꽤 많이 마셨다. 자려고 침대로 들어왔는데 덴마크 아저씨가 내가 태어나서 난생 처음 듣는 굉장한 소리로 코를 골았다. 왠지 예민했는지 쉽지 잠이 들지 않았다. 뒤척이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시계는 새벽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 일정이 조금 걱정되었다. 수비리(Zubiri)까지의 길 역시 긴 내리막으로 순례길 전체에서 난코스로 알려져있다. 역시나 아침 7시쯤 일어났는데 어제보다도 개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제 동네 수퍼마켓에서 사놓은 빵과 자판기 커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출발했다.
산을 넘은 경험 때문인지 웬지 걷기는 자신이 좀 붙었다. 가방의 무게중심도 잘 잡힌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잠을 잘 못 잔 것에 비하면 컨디션도 괜찮았다. 17km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지난 이틀에 비하면 오늘의 지형은 애교였다. 낮은 산 몇 개와 거기에 딸린 인간적인 오르막과 내리막들. 그런데 문제는 길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건 자갈도 아니고 커다랗고 뽀족하게 솟은 돌들과 생각보다 내리막이 경사가 심했다. 스틱을 이용해서 내려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다고 보니 더 긴장하고 힘이 들었다. 게다가날씨가 꽤나 더웠다. 잠을 못자서 졸립기도 했다. 내리막이 계속되자 아주 약간의 무릎 통증도 느꼈다.
산맥을 넘었기에 오늘부터는 쉬울 것이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처음에 출발할 때는 이틀 간의 경험으로 내 몸도 이제 적응을 마쳤고, 오늘부터 위기는 없을 것이라 자만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원래는 수비리보다 더 걸어볼까 했는데, 결국 계획을 바꿨다. 수비리에서 숙소를 부랴부랴 잡았다. 수비리는 숙소도 많았지만, 사람도 많았다. 어쩌다보니 공립 알게르베에 숙소를 잡았다. 배고픈 건 둘째고 먼저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자고 싶었다. 그렇게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딱 나오는데 내 침대 맞은편에 홍 선생님(생장에서 만난 어르신)이 딱 계신 것였다. 일정상 길에서 마주칠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한 방까지 쓸지는 몰랐다. 홍 선생님은 반갑게 맞아주시고, 16번째 순례길인 본인도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빨리 들어와 쉬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나를 뭘 먹이려고 끌고 나가셨다. 반가운 마음에, 약간은 안심도 되는 마음에 빨래도 못하고 얼떨결에 따라나섰다.
문제는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이었다. 순례길에 오른 이후 요일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않하고 걸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웬만한 중소 도시는 토요일에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는다. 그나마 문을 연 몇몇 바르에서는 토르티아 같은 간단한 음식과 술만 팔았다. 홍 선생님은 두꺼운 토르티아 두 개와 와인 두 잔을 가지고 오셨다. 한낮에 미지근한 와인보다는 시원한 맥주가 간절했던 탓에 나는 맥주를 주문했다. 아쉬운대로 허기를 채우고, 다행히 홍 선생님도 피곤하셨는지 들어가서 낮잠을 자자고 하셨다. 빨래를 잽싸게 하고 낮잠을 잤지만, 그렇게 쉽게 잠이 들지는 못했다. 너무 피곤했다. 숙소의 다른 순례자들도 수비리까지 오는 오늘 길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책에는 안 나오는 정보지만, 오늘 걸은 길의 난이도는 분명 높았다.
1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다행히 콘디션도 돌아왔고, 걱정했던 무릎도 괜찮았다. 아까는 배가 하나도 안 고팠는데, 자고 일어나니 배가 고팠다. 홍 선생님이 국물 있는 라면이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그 정도는 내가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토요일이라 문 연 수퍼가 없었지만 주유소 편의점에 한번 가봤다. 거기서 극적으로 일본 컵라면 4개를 살 수 있었다. 순례길에서 문 연 마트나 식당이 없을 때 동네 주유소에 가보는 것도 좋은 팁이라고 한다. 순례길 초반이 너무 힘들다. 그래서 프랑스길의 초반 피레네 산맥을 넘은 순례자들의 완주율이 중간에서 시작한 순례자들보다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나보다. 힘든 코스는 오늘로 끝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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