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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피레네 산맥을 넘어 넘어

3.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by 어린뿔 2023. 11. 1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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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6. (금)

날씨 : 해 쨍쨍, 더움

출발 : Orisson

도착 : Burguete

거리 : 19.7Km

시간 : 0830 → 1500 

숙소 : Lorentx Hostel

비용 : 41유로(57,680원)

맥주 : 3.70

숙소 : 15

저녁 식사 : 14.5

아침 거리 : 8

 

어제 숙소에는 10명이 한 방에서 5개의 벙커 침내에 나뉘어 잤다. 자전거로 산타아기까지 간다는 룸메이트들은 무서워보이는 인상과 달리 조용조용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이 잘 때는 등도 잘 안 켜고 그랬다. 그러나 문제는 그중 둘이 엄청나게 코를 골아댔다. 어제 그 고생을 하고 여기까지 온 나로서, 다 힘든 마당에 이해가 됐다. 귀마개를 하고 잤다. 사실상 순례길 첫 알베르게에서 맞은 밤이었고 아주 잘 잔 것도 아니지만, 또 영 못 잔 것도 아니었다. 아침에는 생각보다 콘디션이 괜찮았다. 

 

오늘 출발하는 지점인 오리손 산장은 오늘 넘어야 할 피레네산맥의 정상이 아니다. 오늘 또 다시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가 정상을 찍은 후 계속 내려가 다음 도시인 론세바예스(Roncesvalles)로 가야한다. 이 구간은 순례길 전체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체력적으로도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또 많은 길 중에 프랑스길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아름답고, 순례길이 끝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구간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피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순례자들이 아침에 생장에서 출발해서 산을 넘어 바로 론세바예스까지 하루만에 가는 일정이다. 나는 오리손에서 중간에 휴식을 취해 이틀에 걸쳐 산을 넘는 샘이라, 론센스바예스에서 한 마을 더 간 부르게테(Burguete)가 목적지였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 나았다. 어제가 1단 기어였다면, 오늘부터 2단 기어로 올린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순조롭게 걸었다. 콘디션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나혼자가 아니었다. 길 위에 많은 순례자들이 있었고, 어제는 눈 씻고 찾으려 해도 못 찾았던 노란 화살표도 많았다. 심적으로 훨씬 더 안정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에 언덕이 나와도 이젠 두렵지 않았다. 어제 고생하면서 길에 대한 믿음, 나에 대한 믿음이 조금은 커졌고, 좀더 편해졌다.  그렇게 걱정보다는 힘들지 않게 피레네 산맥을 넘어 긴 내리막을 내려왔다. 날씨도 좋았고, 오랫만에 등산하는 기분이었다.  

 

긴 내리막을 마치자, 길 끝나는 지점에 바로 말로만 듣던 바르(bar)가 있었다. 산을 넘은 기념으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때려주는데 길에서 만난 미국인 조난단이 때 마침 지나다가 같이 한 잔 했다. 하필 숙속도 바로 옆이었다. 그래서 저녁까지 같이 먹기로 했다. 오늘 묵은 사립 알게르게는 꽤 괜찮았다. 오자마자 빨래를 했다. 옷을 두 세트밖에 가지고 가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숙소 도착→샤워→빨래 순서의 루틴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볕은 좋은데 의외로 잘 안 말랐다. 안 마르면 그냥 입어서 말리면 된다. 그러면 금세 마른다. 어쩌다보니 같은 이 숙소에 묶은 다른 순례자들도 나와 조나단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됐다. 익히 예상되는 인터네셔널한 저녁 식사가 됐고, 이어서 알베르게 공용공간에서 맥주 파티가 이어졌다. 어쩔수 없이 모두 영어로 이런 저런, 그러나 알맹이는 별로 없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오늘은 왠지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는 성취감에 취해 모든 게 쉽게 진행됐던 하루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그런 산을 내가 넘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내일쯤이면 완전 적응되어 3단 기어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침에 오리손에서 출발할 때 바라본 풍경. 정말 제대로다.
저기가 정상일까? 하고 올라가면 또 다른 봉우리가 보이고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나중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싶다.
아주 어렵고 올라왔지만, 정상에는 별거 없다.
하루를 마치고 마시는 맥주는 꿀맛이었다. 순례길 내내 매일 술을 마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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